개요
전 세계 인구의 에너지 수준에 대한 분포도를 그림으로 그리면 흡사 뾰족탑 모양을 연상시킨다.
전인구의 85%가 분기점인 200 이하에 속하며, 인규 전체의 평균 의식 수준은 오늘날 204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잇는 비교적 소수의 강력한 힘이 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약한 에너지를 상쇄함으로써 204의 평균치를 얻게 한다.
언뜻 보기엔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기 쉽지만, 세상살이의 모습을 살펴보면 수긍하게 된다.
아직도 생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지구 도처에는 너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250이 되기 전까지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250 수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이 생기고, 그로써 의식의 진화 선상에 서서 긍정적인 삶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문화적 상관관계 p93
200 이하의 에너지장은 겨우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아주 원시적인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200대의 중간 수준에서는 조금 숙련된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소박하긴 하지만 생활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식주의 경제가 존재하고, 기초적인 교육이 시작된다.
200대의 높은 수준에서는 숙련된 노동자, 막일꾼, 상인, 소매업자 등을 볼 수 있다.
300대의 수준에서는 기술자, 숙련공, 경영자, 그리고 소박한 형태의 사업가를 볼 수 있다.
이차적인 교육이 시작되고, 옷차림이나 온동, 연예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TV가 주요한 소일거리가 된다.
300대 중간 수준에서는 전문 경영인, 기능공, 교육자 들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 가족이나 이웃, 도시를 초월하여 국가와 국가의 복지를 생각할 줄 아는 세계관이 생기기 시작한다.
400대의 수준에서는 지성의 눈뜸으로 진정한 식자층이 나타나고, 좀 더 높은 수 눈의 교육으로 전문가 층과 과학자, 행정 관리 등이 형성된다. 이들은 TV 교양 프로그램에 흥미를 갖고, 정치적인 사건의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
대법원, 판사, 대통령, 정치가,발명가, 산업계의 지도자들이 이 범위에 속한다.
400대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서는 각 분야의 지도자들,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고위급 인사를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는 499의 측정치를 보인다.
400대의 수치가 대학과 박사들의 수준이긴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제한되어 있어
융통성 없는 뉴턴의 우주관이나 몸과 마음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에 머무른다.
뉴턴과 데카르트도 499의 측정치를 보여준다.
200의 측정치가 의식 세계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듯이, 500의 수치는 깨달음의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500대의 수준에서는 개인의 생존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행동의 저변에는 사랑의 동기가 작용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능력이 곳곳에서 보이며, 이는 헌신, 열심, 다채로운 경력 등으로 나타난다.
원리 원칙을 중시하지만 남을 아끼는 마음이 행동 동기가 된다.
자신은 지도자의 위치를 추구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로 우대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수준에서는 음악, 미술, 건축 들의 걸작이 나오고, 이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의기가 고양된다.
500대의 높은 단계에서 우리는 사회 전반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창조함으로써 인류 전체에 끝없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들은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잘 알고 있지만 사회 대중으로부터는 보통이 아닌 어딘가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500대 중간 수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심오한 의미를 갖는 영적인 체험을 하기 시작하고,
영적인 추구에 몰두함을 볼 수 있다.
현실에 대한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며 이로써 주위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 수준에서는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고 한다.
이 단계에서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600의 수준으로 도약한다.
이 수준에서는 개인의 생애게 전설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600의 특성은 자비로서, 그들의 행동 밑바닥에는 자비가 깔리게 된다.
의식의 진전 p96
이상에서 기술한 의식 수준의 진폭은 매우 큰 것이 사실이지만, 한 개인이 생애를 사는 동안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도약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다.
태어났을 때 측정된 에너지장은 일생동안 겨우 5점 정도의 증가를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 이미 결정되어 잇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한 무엇인가를 시사해 준다. p96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 경험을 자신들의 타고난 에너지장 또는 의식 수준에서 해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진보를 이룩하긴 하지만, 타고난 에너지장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수준이 우리의 행동 동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p97
동기는 의미에서 나오고, 의미는 사물을 이해하고 믿는 개인의 관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의 행동은 사물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비롯되며, 이 관점에 기반을 둔 행동 동기가 결국 우리들의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백 이상의 수치에 이르는 갑작스러운 도약 또한 가능하다.
만일 개인이 에고 중심적인 200이하의 에너지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친절하고 진실하고 착하고 용서할 줄 아는 의식적인 태도를 위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자기의 근본 목적이 된다면, 그는 높은 차원의 의식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한 의지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평생에 걸쳐서도 한 에너지장에서 다른 에너지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잠재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잠재력과 만나고, 그 잠재력이 그 사람의 인생길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서는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p98
의식 수준의 측정치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수 logarithm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생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실로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361과 361.1이 갖는 에너지 수준은 현저하게 다르다.
따라서 361의 삶과 361.1의 삶은 크게 다를 수 밖에 없으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작은 차이가 ㅅ상 전체를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제6장 새로운 지평선 p99~
우리의 독특한 연구 방법은 이제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숨겨진 지식에 대한 탐구를 가능하게 해 준다.
이 방법은 아주 평범한 실생활뿐만 아니라 고도의 이론적 탐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사회 문제
높은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고도로 강력해진 에너지 상태를 자주 경험하지만, 이러한 순수 상태를 규칙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높은 에너지장이 낮은 에너지 장인 근심, 공포, 분노, 분개 등으로 항상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사랑을 느끼고 황홀감이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 높은 경지는 너무나 강렬하여 한번 경험하면 절대 잊히지 않으며, 자꾸 그 경지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결국 사람들은 높은 경지의 경험에 중독된다고 할 수 있다.
명화인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조건 없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이상향으로 묘사되는 샹그리라는 600으로 측정된다.
높은 경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평범한 의식 세계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명상을 통해 삼매경을 체험한 사람들이나 임상적으로 죽음의 선고를 들었으나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한때 자기들이 도달했던 높은 의식 상태에 다시 도달하고자 추구를 계속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전환이 이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진리를 추구하는 도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높은 의식 상태는 사랑이나 종교 고전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적 수련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추구하는 높은 의식 상태란,
사실 그들 자신의 의식(진아, Self)의 장에 대한 경험에 지나지 않다.
영혼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황홀경을 이해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고도의 의식 상태란 자기 밖의 무엇(예를 든다면 승이나 음악, 약물, 연인 등)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믿어버리기 쉽다. 사실 그들에게 일어난 느낌이란 특수한 상황 아래서 '자신들 내면에 지금 있는' 그 무엇을 경험한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순수 의식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므로, 스스로의 안에 있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p101
이것은 그들이 낮은 상태인 에고 중심의 자신을 진정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는, 자신의 본질인 흠 없고 완전한 '밝음'을 가리게 된다.
'도취감'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일상의 의식 수준을 넘어선 경험을 일컫는다.
따라서 '두려움'의 수준에서 살던 사람이 '용기'의 수준으로 진전됨으로써 경험하는 것은 '도취감'일 수 있다.
희망이 없는 '무기력' 수준에 사는 사람들에 '분노'는 높은 도취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두려움'은 '절망'보다, '자존심'은 '두려움'보다 좋게 느껴진다.
'포용'은 '용기'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지고, '사랑'은 그보다 낮은 어는 단계와도 비교할 수 없다.
'기쁨'은 많은 인간의 감정들을 초월하며, 황홀경이란 흔하게 오지 않는 희귀한 감정이다.
가장 숭고한 경험은 무한한 '평화'의 상태로,
이는 모든 언어를 거짓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p102
높은 의식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이미 주어진 자신의 전 생애를 다시 계획하고 싶어 진다.
고도의 의식 상태를 단 한 순간 경험했을지라도, 그 순간의 경험은 인생에 대한 생각이나 목적, 가치관을 온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옛날의 자기가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영혼의 길목에서 얻어진 이러한 보기 드문 경험이야말로 영혼의 진화,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는 고된 노동이나 금욕주의, 자기희생, 절제 등을 미덕으로 여기며
이러한 기쁨 없는 상태를 오히려 이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기쁨은 비난받기 일쑤이며, 심지어는 불법으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는 유혹이나 선전은 합법화해 놓고도 그 유혹이나 선전이 실행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상업화된 성적 유혹 물은 수없이 팔리지만, 매춘을 통해 행위를 즐기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금지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지배 계층은 엄격하고 금욕적인 윤리에 의한 사회 통제를 수단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을 얻어냈다.
아랫사람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그들이 삶을 향유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지배층은 오히려 더 부유해졌다.
삶의 기쁨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주어지는 특권이다.
도덕률이란 것은 가치관을 조장하여 지배 계급이 대중의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려울수록 하늘나라의 보상은 더욱 클 것이라는 환상이 심어진 것이다.
이처럼 기쁨과 고통이 연관되어 있다는 개념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p014
이러한 풍조 속에서 중독자들이 일시적이나마 맛볼 수 있는 황홀과 고통 사이의 미친 듯한 방황은,
의식의 고양 상태를 금지하는 사회에 대해 거센 반발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오늘날의 사회가 처방하고 있는 '문제 해결'방식도 이와 흡사하다.(남용되는 약물의 취급과 사용 금지 등).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폭리를 취하는 시장을 만들어 낸 꼴이 되었고, 퇴폐 생활자와 범죄 집단을 양서 하는 셈이 되었다.
마약범죄 조직의 두목을 체포하는 일은 약물 중독의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두목이 감옥에 투옥되기도 전에 이미 새 사람이 들어앉을 뿐이다.
악명 높은 남미의 에스코바가 죽자 그 자리에는 세 사람이 들어앉았고, 그 결과 이제 우리는 한 사람 대신 세 사람을 상대해야만 했다.
신학, 인식학, 철학 분야에서의 응용 p107
이 책의 전체적인 진실성은 750의 수치로 측정된다.
대답뿐만 아니라 질문의 진실성 정도도 수치로 측정해 봄으로써 진실의 본질에 대한 혼동을 피할 수 있다.
모순이나 불분명함 등은 의식 수준의 혼란에 그 원인이 있다.
즉 주어진 해답은 그 해답이 주어질 수 있는 의식 수준에서만 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맞는' 해답이지만 동시에 '무가치한 ' 해답일 수도 있는 것은, 음표가 맞게 연주된 음악이라도 전제적으로 보면 잘못 연주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찰된 모든 사실은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의식 수준의 반영이며, 따라서 자신의 수준에서만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를 다루는 어떠한 방법도, 그 자체에 이미 한계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높은 이해의 수준에서는 진실이 될 수 있는 것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때문에 듣는 이의 한계로 사실이 왜곡되면 그 사실의 진정한 가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이것은 여러 세대에 거려 전해지는 동안 종교가 겪어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기도 하다.
높은 깨달음의 수준에서 나온 본래의 가르침이 권위 의식에 젖은 후대의 추종자들에 의해 잘못 해석되곤 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왜곡 현상은 종교우ㅢ 원칙주의자들한테서 심각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가르침 중에서 부정적인 것을 항상 강조함으로써, 진실과 먼 부정적인 것들을 먼저 내세운다.
질투. 복수. 분노. 죽음의 하느님을 내세움으로써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p108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다.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는 살인자, 광신자,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목적을 이루려는 극단적인 정치가 등 그 사례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인간의 대화란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강력한 끌개 에너지장의 상호 작용으로,
만화경 같은 그 미묘함과 광대함을 생각해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이러한 밑그림에 따라, 어떠한 진술이라도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진실일 수 있지만
그러한 조건을 규정하고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눈으로 볼 수도 없었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이것은 마치 인생의 탐험길에 나선 각 개인에게 나침반이 가각 다르게 맞추어진 것과 같다.
그나마 의미 있는 대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이 전체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을 두루 감싸는 끌개장이 존재함을 뜻한다.
이 끌개장이야말로 모든 가능성의 것들을 눈에 보이도록 현현하게 하는 힘이다. p109
조화의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혼돈의 장막 뒤쪽에 감춰져 있는 조직적인 패턴에서 생겨난다.
그리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상스러운 파장에도 불구하고 인류 진화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잇는 것이다.
혼돈이란 제한된 인지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만물은 더 큰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며, 모든 개인은 모두를 두루 감싸는 의식 자체의 끌개장이 걷고 있는 진화의 행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에게 이미 부여된 의식의 총체적인 장, 이것이 바로 진화의 힘이며 이 진화의 힘이야말로 인류와 모든 생명체의 구원을 보장한다.
https://blog.naver.com/zest060/memo/10065582165
[공유] 의식혁명7 제5장 p92~ 의식 수준의 사회적 분포 /제6장 새로운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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